[시사paradigm] 군중의 감정과 도덕성
- 군중의 충동성, 변덕스러움, 과민성
군중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든 자극의 노리개이며,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것의 변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군중은 충동의 노예다.
이 사실을 생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고립된 개인은 자신의 반사적 행동을 자제할 능력을 가졌지만 군중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군중은 무슨 일이 되었든지 간에 미리 계획할 줄을 모른다. 그들은 극도로 상반된 감정을 연속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
- 군중의 피암시성과 맹신
무의식의 경계를 계속 배회하며 모든 암시를 쉽게 받아들이고 일체의 비판능력을 박탈당하여 이성의 영향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군중은 모든 것 너무 쉽게 믿어버릴 수밖에 없다.
정말 무식한 사람에서부터 최고로 유식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류의 개인들로 구성된 군중이 쉽게 빠지는 집단 확각 증상. 비록 군중의 숫자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소멸할 수도 있고 실제 사실이 그것과 무관한 환각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착각에 사로잡힌 최초 목격자의 증언은 충분히 다른 모든 사람에게 암시를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티마의 예언)
- 군중이 느끼는 감정의 과장과 단순함
군중이 드러내는 감정은 좋든 나쁘든 무척 단순하면서도 매우 과장되어 있다는 이중의 특징을 보인다. 군중을 이룬 개인은 섬세한 의미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하며 그 이행 과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군중 속에서는 감정이 한층 더 과장된다.
군중은 감정이 단순하고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의심도 모르고 불확실성도 모른다.
군중은 고립된 개인은 할 수 없는 감정 표현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군중은 숫자가 많으므로 무사하리라는 확신과 인원이 많으니 일시적이나마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 덕분이다.
감정이 과장된 군중은 오직 과장된 감정에만 감동한다.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웅변가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확언을 거침없이 늘어놓아야 한다. 과장하고 확언하고 반복하되 이성적 사고에 의해 논증하려는 시도는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대중집회 연설가들이 잘 알고 있는 연설 기법이다.
때로는 어떤 한 나라에서 군중을 열광시키는 연극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든지, 아니면 전문가들로부터만 호평을 받거나 의례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할 힘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군중의 비관용성, 권위주의, 보수성
군중은 오직 단순하고 극단적인 감정만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암시된 견해와 사상, 신념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든지 아니면 역시 절대적 오류로 치부해버린다. 이성적 사유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암시를 통해 고정되는 신념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권위주의와 비관용성은 군중에게 명확하게 나타나는 감정이다. 군중은 그 같은 감정을 쉽게 느끼고, 사람들이 그것을 불러일으키면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긴다. 군중은 힘 있는 사람은 존경하고 순종하지만, 그들이 볼 때 무능함의 한 형태로밖에 안 보이는 어진 사람의 행동에는 그다지 감동받지 않는다. 군중은 온후한 지배자에게는 결코 공감을 표시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폭군에게는 동조해왔다. 더구나 군중이 가장 높이 세운 동상은 언제나 폭군의 것이었다.
군중은 허약한 권위에 대해서는 언제든 봉기하고 강력한 권위 앞에서는 언제라도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권위의 힘이 간헐적으로 행사되면 군중은 항상 자신의 극단적 감정에 따르면서 무정부 상태에서 노예 상태로, 그리고 노예 상태에서 무정부 상태를 왔다갔다한다.
권위의 힘이 간헐적으로 행사되면 군중은 항상 자신의 극단적 감정에 따르면서 무정부 상태에서 노예 상태로, 그리고 노예 상태에서 무정부 상태를 왔다갔다한다.
그렇지만 군중의 혁명적 본능이 우세하다고 믿는 것은 군중심리학을 잘 모르는 소치의 결과다. 우리는 그들이 폭력적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 보고 그 점에 대해 착각한다. 군중은 무의식의 지배를 너무 강하게 받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오래된 정신적 유산이 갖는 영향력에도 지나치게 예속되기 때문에 극도로 보수적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얼마 안 있어 무질서에 싫증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노예 상태로 되돌아가고 만다.
군중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제도의 명칭을 바꾸고 싶어 하며, 때로는 이 같은 명칭 변경을 위해 폭력 혁명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본질은 인종의 유전된 욕구를 너무 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군중은 항상 그것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 군중의 도덕성
도덕성이라는 단어를 어떤 사회적 관습을 지속적으로 준수하고 이기적 충동을 항상 억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군중이 너무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워서 도덕성을 갖출 수 없으리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도덕성이라는 단어를 금욕이나 희생, 이타심, 자기희생, 평등 욕구 같은 자질의 일시적 표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군중이 때로는 매우 고귀한 도덕성을 갖출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군중은 살인과 방화 등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또한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헌신이나 희생, 이타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의용군...역사를 보면 얼마나 많은 군중이 자신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신념과 이념, 구호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가!
군중이 파업하는 것은 쥐꼬리만 한 임금을 몇 푼이라도 올려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떤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다.
개인이 군중에 섞이면 이처럼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물론 지속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빈번하게 관찰되는 법칙이다.
군중은 흔히 저열한 본능에 자신을 내맡겼을 때도 이따금 고귀한 도덕적 행위의 모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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